1950년대 한국의 군진정신의학은 미국의 군진정신의학을 활발히 수용하면서 자신들의 전문성을 쌓아나갔다. 한편 1960년대 이후 한국의 정신분석학은 정신분석학 일반의 사조 가운데 프로이트 좌파, 맑스주의 정신분석, 그리고 페미니즘 정신분석이 누락된 채 수용되었다. 또한 정신분석학은 1950~60년대 임상 현장에서 일정한 학적 권위를 지니고 있었고, 이에 따라 정신의학자 백상창은 의무장교 시절인 1960년 자살한 병사가 지녔던 동성애 성향의 원인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및 부모의 성역할 교란, 유년기 발달 “단계”에 머문 퇴행으로 분석하였다.
백상창은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으로 40여년을 근무하면서, 1960~70년대에 이혼 여성, 여성운동, 동성애의 원인을 “남녀의 역할착란증”으로 규정하였다. 성에 대한 그의 보수적인 인식은 일반 사회에 대한 반공·냉전적 인식과도 연결되었다. 이는 정신분석학이 지닌 학지의 넓은 스펙트럼 가운데 정치적·젠더적으로 보수화된 형태가 한국에 취사 선택되어 적용된 결과였다. 그것은 곧 한국 정신분석학의 반공·냉전적 재편을 의미함과 동시에, 한국에서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통치를 확대 재생산하는 지식·제도로 정신분석학이 활용된 사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