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기동 산성은 4세기 후반에 백제가 초축한 산성을 고구려가한성을 함락한 이후 남진하면서 고구려가 재활용하였다는 것이 그동안의주된 논지였다. 이 글은 백제사의 입장에서는 왜 도기동 산성을 초축하게되었는지, 백제의 입장에서 산성의 역할과 가치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안성천 유역 관방체계 중 하나인 도기동 산성의 초축 시기를 문헌사와연결해 보면 근초고왕 28년(373) 독산성민들의 신라 이주 기사가 주목된다.
백제는 이 사건을 계기로 성이 축조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도기동 산성의축조 목적은 새롭게 지방 지배를 재편하기 위한 것이었다. 성주가300명이라는 대규모 인원을 이끌고 신라에 투항했다는 것은 그 지역이중요한 거점성이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백제는 기존 거점이 아닌 새로운거점성을 마련하여 기존의 지역 집단을 견제하고 백제 중앙의 장악력을강화하고자 했을 것이다. 도기동 산성은 길성리 토성의 폐기와 독산성주의 투항으로 백제가 소근산성의 축조와 함께 새로운 지방지배의 거점성으로 축조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백제에 있어 도기동 산성이 가지고 있던 가치는 다음과 같다. 첫째, 도기동 산성은 지리적인 요충지로 웅진으로 내려가는 교통로를 차단하여방어의 기능을 강화할 수 있었다. 둘째, 도기동 산성은 구릉성으로 주변에 평야지대가 위치하고 있어 경제적 이점을 가지고 있었다. 셋째, 도기동 산성은 남방 진출을 위한 거점성이었다. 진위천, 오산천, 황구지천, 안성천 유역에서 철기 출토가 많은 것은 이 지역이 방어 상 중요한 요충지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제철기지에서 생산된 철은 각 거점의 관방 시설에 공급되어 철제품이 바로 유통되었는데, 안성천 유역에 위치한 도기동산성은 거점 관방시설로서 철제품이 공급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