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래 우리 판례는 징벌적 손해배상을 명한 외국재판의 승인·집행을 민사소송법 제217조제1항 제3호의 이른바 ‘공서 요건’을 근거로 일관되게 거부하여 왔다. 손해의 전보를 근본이념으로 하는 우리 손해배상법의 입장에서, ‘제재’라는 일응 형사법적 목적이 가미된 징벌적 손해배상은 단순히 생소한 것을 넘어 도저히 시인할 수 없는 내용의 것이었다. 그러나 2011년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을 필두로, 개인정보 보호법, 신용정보의 이용및 보호에 관한 법률,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대리점 거래의공정화에 관한 법률, 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등 20여 개의 개별 법영역에서특별법의 형태로 손해액의 최대 3배 또는 5배에 해당하는 액수의 배상을 명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었는바, 전보배상의 범위를 넘는다는 이유만으로 곧바로 공서에 위반된다고보던 기존의 논의는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본고가 다룬 대상판결은 이러한 변화를 대법원이 공식적으로 받아들인 최초의 선도적 사례라는 데 그 의의가 있다. 필자는 전술한 입법적 사정변경 속에서 대상판결과 같은 태도의 변화는 불가피하고, 응당 하여야하는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변경된 판례의 일반론적 설시가 과연 대상판결의 사안에도적용되는지에 관하여는 의문이 든다.
우리 법이 도입한 것은 엄밀히 말해서 보통법상 징벌적 손해배상과는 구별되는 성문법상 배액배상이다. 그리고 그 도입 취지로는 징벌적 성격보다는 보상적·법집행적 성격이강하게 나타나며, 각 법영역별로 중시되는 기능이나 배상액의 상한이 상이하다. 즉, 전보배상의 원칙은 여전히 원칙적으로 우리 손해배상법을 지배하는 이념이며, 입법정책적 판단에 따라 제한적 영역에 한하여 예외가 인정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전보배상의 범위를 초월하는 배상을 명하는 외국재판은, 그것이 우리 법상 전보배상의 예외가 인정되는영역과 동일한 ‘영역’인 때에 한하여 그 승인·집행의 결과가 우리 공서에 위반되지 아니한다고 할 수 있다.
‘영역’을 판별하는 기준으로는 개별 ‘조문’, ‘법률’, ‘분야’를 들 수 있다. ‘법률’이나 ‘분야’의 경우, 입법자나 판단자의 주관에 따라 어디까지가 같은 법률·분야인지를 판별하기가 어렵고, 그 과정에서 영역의 범위가 조금씩 확대되어 궁극적으로는 징벌적 손해배상을명한 외국재판 일반이 우리 공서에 위반되지 아니한다는 결론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판단의 명확성 및 당사자의 예측가능성, 상호주의, 기존 판례·통설과의 연속성 등을 감안할 때, ‘조문’을 기준으로 같은 영역인지 여부를 판단하여야 한다. 그럼에도 대상판결은 ‘법률’이나 ‘분야’를 기준으로 영역의 동일성 여부를 판단하고 있음은 물론, “적어도”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향후 영역의 확장 가능성까지 내비치고 있다. 대상판결의 사안에서 미국판결이 근거로 삼은 하와이주법상 배액배상의 취지는, 우리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상 배액배상과는 달리 징벌을 통한 억제에 있는 점, 피고가 한 것으로 인정된 ‘불공정한 경쟁방법’은 우리 법상 ‘불공정거래행위’에 상응하는데 입법자는 입법과정에서 전문위원과 공정거래위원회 등의 의견을 반영하여 불공정거래행위를 배액배상의 대상에서 의도적으로 제외한 점 등에 비추어도, 대상판결의 지나치게 과감한 설시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결국 대상판결의 사안에서는 원심판결과 같이 미국판결을 전보배상의 범위내에서만 승인하였어야 한다.
한편 대상판결의 사안에서 문제 되지는 아니하였으나, 이른바 ‘과도한 전보배상’을 제한할 수 있는지, 제한한다면 어떻게 제한할지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외국재판에서 지급을 명한 위자료나 변호사 비용 등의 산정방식이 우리나라와 달라 그 액수가 현저히 고액인 경우가 대표적인 예이다. 과거 우리 하급심판결들은 외국재판에서 명한 것이 전보배상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과도한 경우에는 그 승인을 제한할 수 있다고 보았으며, 대법원은이러한 하급심판결을 승인함으로써 그 견해에 찬동하고 있었다는 것이 주된 분석이었다. 그러나 민사소송법 제217조의2 제1항 신설 이후 최근 대법원 판례는 외국재판에서 명한것이 전보배상이라면 민사소송법 제217조의2 제1항을 근거로 그 승인을 제한할 수 없다는판시를 이어오고 있으며, (비록 명시적으로 설시한 바는 없으나) 제217조 제1항 제3호를적용하여서도 승인을 거부할 수 없다는 취지로 읽힌다. 이러한 바뀐 판례의 태도가 민사소송법 제217조의2 제1항 신설 이전에 비하여 도리어 우리 국민과 기업을 불리한 지위에놓이도록 만들고 있다는 지적은 일응 일리가 있으나, 우리 법원이 구체적으로 전보배상액이 어느 정도를 초과하면 공서에 반하는지에 관한 명시적인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는 이상, 실질재심사금지원칙과 당사자의 예측가능성의 측면에서 외국재판에서 명한 전보배상은 그 액수의 다과를 불문하고 그 승인을 제한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우리 법원과 국회, 학계가 중지를 모아, ① 전보배상을 초과하는 손해배상을 명하는 외국재판의 승인은 원칙적으로 제한하되 우리 법상 대응하는 배액배상 조항이 있는경우에 한하여 예외적으로 당해 조항에서 규정하는 상한의 한도 내에서 이를 승인하고, ② 전보배상을 명하는 외국재판의 승인은 과감하게 허용함으로써, 우리 국민과 기업의 피해를 방지하면서도 우리나라를 매력적인 법정지(forum)로 만들어 나가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