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의 고전 중 『사기』만큼 여전히 논쟁적인 저작도 없을 것이다. 『사기』를 둘러싸고 전개된 다양한 토론 주제들 중 본 논문은 그 역사기술의 특징을 조명한다. 역사기술에 대한 그동안의 논의는 사마천의 이중적 말하기와 복수의 말하기, 그리고 개별 편의 특징적 기술방식에 초점을 두어 왔다. 하지만 중국사학사의 전통과 관련하여 중요한 질문은 『춘추』이래의 도덕사관과 전국시대에 형성된 『춘주좌전』과 『전국책』 속에 드러나는 역사의 사실적 기술방식 사이에서 사마천이 어떤 관점을 취하고 있는가이다. 그동안 이 주제는 사마천이 공자와 『춘추』를 계승하고 있다고 하는 관점 때문에 하나의 논의 주제로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본 논문에서 필자는 사마천이 역사적 인물들에 대한 규범적 평가를 전적으로 버리지는 않고 있더라도 그것은 『춘추』 류의 도덕사관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 또 『사기: 열전』을 통해 두드러지는 역사기술 방식은 포폄보다 오히려 역사의 실제를 드러내는 방식이었음을 주장한다. 본 논문에서는 특별히 전국기부터 진(秦)의 통일까지를 분석하여 사마천이 이익과 전략의 관점을 통하여 그 시대를 이해하였고, 전한기 인물들을 다룰 때에는 각 인물들의 개성과 함께 그들의 장단점을 사실적으로 기술하여 어떠한 신화적 외피도 제거하였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나아가 그의 역사적 실제에 대한 관심은 통치를 이해할 때 그 실제적 효과를 중시하게 하였고, 도가적 통치관의 옹호와 유가의 예치와 법가적 통치에 대한 회의는 이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고 보았다. 역사의 실제를 통하여 그는 역사란 본래 복합적(complex)임을 인식하게 되었고 그러한 역사기술 속에서 어떤 사관을 갖거나 결론을 내리려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