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에서는 藏書閣 소장 〈二十功臣會盟軸(寧國功臣錄勳後)〉(보물), 〈二十功臣會盟軸(保社功臣錄勳後)〉(국보)을 중심으로 조선 후기 御覽用 功臣會盟軸 4본의 제작 과 書寫官에 대한 기록을 살펴보았다. 특히 글씨를 쓴 서사관에 주목하여 공신의 녹훈 관련 의궤 기록과 서풍의 비교를 통해 1646년(인조 24) 〈영국회맹축〉이 寫字官 金義信(?~1663 이후)이 쓴 것임을 밝혔다. 현전하는 회맹축 2본에 대한 선행연구에서는 묵삭의 흔적, 어보의 날인 여부, 재료의 특징이 동일한 점을 근거로 1694년(숙종 20) 〈보사회맹축〉을 제작할 때 〈영국회맹축〉도 함께 다시 제작한 것으로 보았다. 이에 대해서는 우선 〈영국회맹축〉이 김의신이 쓴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에 1694년(숙종 20) 에 현전하는 두 회맹축이 함께 제작되었을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또한 다른 어람용 공신회맹축 관련 기록에 묵삭의 사례가 있으며, 반드시 어보를 날인했는가 하는 문제는 두 회맹축 이외에 비교 대상이 전하는 않는 현재 상황에서는 판단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회맹축은 늘 전례에 따라 제작했기 때문에 그 형식의 유사성을 제작 시기 추정의 근거로 보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한편 〈보사회맹축〉을 필사한 서사관이 사자관 李翊臣(1631~1711)이라는 견해가 있으나 아직 명확한 기록은 찾지 못했다. 그러나 전해지는 이익신의 다른 필적과 〈보사회맹축〉의 글씨 사이에 여러 유사 점이 발견되는 만큼 이익신이 〈보사회맹축〉을 필사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