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관(李在寬, 1783-1838년경)이 그린 ≪고사인물도(故事人物圖)≫(국립중앙박물관 소장)에는 네 명의 아름다운 여성이 등장한다. 아름다운 여성을 소재로 한 그림은 남성의 시각적 즐거움을 충족시키기 위한 작품으로 생각되기 쉽다. 그러나 우리가 소위 “미인도”에서 읽어낼 수 있는 것이 오직 남성의 욕망뿐일까? 이러한 그림들에 여성의 수요와 요구가 반영되었을 가능성은 없을까? ≪고사인물도≫에는 19세기에 경화세족(京華世族)들에게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간주된 재녀(才女), 여협(女俠), 은거자(隱居者)가 그려져 있다. 재녀, 여협, 은거자는 일견 이질적으로 보이나 모두 19세기에 경화세족들이 바람직하다고 여겼던 인물형이다. 특히 당시에 청(淸, 1644-1911)의 강남(江南) 문화에 영향을 받은 경화세족들은 재녀와 여협을 이상적인 동반자로 새롭게 인식하였다. 재녀는 문예적 능력으로, 여협은 신의(信義)를 통하여 경화세족 남성들의 칭송을 받았다.
한편 19세기는 기생들의 예술 활동이 두드러졌던 시기였다. 당시에 몇몇 기생들은 문예적 능력을 바탕으로 경화세족들과 교유하며 예술가로 인정받았다. 이 기생들은 재녀와 여협의 덕목을 모두 갖춘 협기(俠妓)로 자처함으로써 자신이 남성 문인의 이상적인 동반자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고사인물도≫에는 이처럼 19세기의 기생들에 의하여 형성된 협기 이미지가 뚜렷하게 나타나 있다. 당대(當代)의 조선에 협기 이미지를 정착시키기 위하여 주도적으로 노력했다는 점에서 기녀들이 ≪고사인물도≫와 같은 그림의 감상자층(鑑賞者層) 및 수요층(需要層)에 포함되었을 가능성은 크다.
실제로 이재관은 평안남도(平安南道) 성천(成川)의 명기였던 김운초(金雲楚, 1800년경-1857년 이전)와 같이 적극적으로 협기의 태도를 취했던 인물과 교유하였다. 김운초(운초)는 평안남도(平安南道) 성천(成川)의 관기(官妓)로 한양(漢陽)까지 이름이 알려졌던 시인이다. 그는 후에 안동(安東) 김씨(金氏) 집안 출신의 고위 관료인 김이양(金履陽, 1755-1845)의 첩이 되었다. 운초는 이재관의 화실(畫室)인 흔연관(欣涓館)에 출입하며 이재관은 물론 이 작품에 제시(題詩)를 쓴 조희룡(趙熙龍, 1789-1866) 및 강진(姜溍, 1807-1858)과도 교유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고사인물도≫에는 운초를 연상시키거나 그의 시에서 자주 활용된 모티프가 그려져 있다. 이 점에 주목하여 필자는 본고에서 운초가 흔연관 모임의 일원(一員)으로서 ≪고사인물도≫의 제작에 관여하였을 가능성을 살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