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조너선 크래리의 최근 저서『초토화된 지구: 디지털 시대를 넘어 포스트-자본주의 세계로』(2022) (이하 『초토화된 지구』)를 비판적으로 소개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크래리의 이론적 궤적은 크게 보아 전반기와 후반기로 나뉘는데, 전반기가 푸코적 관점에서 지식, 담론, 권력이 동일한 사회적 평면에서 배치되는 방식에 주목한다면, 후기는 글로벌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을 본격적으로 전개한다. 이런 점에서 초기 크래리와 후기 크래리 사이에는 일정한 불연속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초토화된 지구』는 총 세 개의 장으로 구성된다. 1장에서 저자는 인터넷과 글로벌 자본주의가 떼래야 뗄 수 없을 정도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상황을 지시하기 위해 ‘인터넷 복합체’라는 신조어를 사용하면서, ‘인터넷 복합체’가 어떻게 정치적으로 무력한 주체를 양산했는지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2장은 1장의 연속선상에서 기술 혁신과 자본축적의 공모 관계를 세밀히 들여다본다. 3장은 얼굴인식과 시선추적 등의 현상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합성 색채에 더욱더 많이 의존하면서 자연과 교감하는 능력마저 상실하게 된 상황을 ‘시각적 문맹’으로 개념화하고, 이를 넘어서기 위해 생태 사회주의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이 글은 『초토화된 지구』의 주요 논점들을 설명하고, 이와 동시에 크래리가 언급은 했지만 미처 풀어놓지 못한 부분을 상세하게 논의함으로써 그의 주장이 지닌 성과와 한계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