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에서는 라이허의 두 작품-〈저울〉(1926)과 〈동지의 편지〉(1935)를 독해함으로써 창작 언어의 차이가 가져온 작품에서의 변화를 타진하고자 했다. 〈저울〉은 중국 백화문 작품으로 대만신문학의 중요한 이정표로서 평가받는다. 주인공 친더찬의 언행은 작품 속에 제시된 객관적 조건을 벗어나서 결의에 찬 지사적 인물의 그것으로 그려진다. 특히 친더찬의 ‘말’은 중국 백화문으로 옮겨지면서 민족주의적 색채를 더욱 강하게 환기한다. 대만 좌익운동의 부침과 대만화문 논쟁을 지켜보면서, 라이허는 직접 대만화문으로 〈편지〉를 발표했다. 작품은 절반 이상이 대화로 구성되어 있는데, 독특하게도 ‘나’의 말만을 전한다. 상대의 말은 ‘나’의 반문을 통해서 추측할 수 있을 뿐인데, 일본인 관료와의 대화에서 ‘나’의 반문은 거부와 저항의 뜻을 강하게 담고 있다. 하지만 사실 이때의 ‘나’의 반문은 ‘나’의 속엣말이다. 이러한 ‘나’의 모습은 라이허의 사유와 저항의식의 변화를 의미한다기보다는, 단호하고 강경한 식민지 지식인이라는 표상에 가려져 있던 한 자연인으로서의 고뇌와 망설임이 대만어를 통해 비로소 표현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