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동은 명나라 말기 청나라 초의 대표적인 문인으로서 그의 전기와 잡극은 당시 문인극의 대표자가 되었다. 하지만 시는 우동의 작품 중 가장 많은 창작한 장르로, 시를 많이 지은 것 뿐만 아니라 '성정' 위주의 시학 논설도 제시하였다. 이러한 그의 시 창작은 우동의 희곡, 특히 잡극 창작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으므로 우동의 잡극과 시는 '상호체용'의 특성을 보여주었다. 외적인 '용'의 측면에서 보면 우동은 잡극에 선인들의 시를 활용하고 시를 창사와 년백에 통합함으로써 서사시와 영사시의 언어 또한 일종의 '극적' 특성을 갖게 되었다. 내재된 '체'의 측면에서 보면 우동의 시와 잡극이 모두 서정의 주체성을 표현하는 데 이미지 묘사로 어떤 통일한 감정을 표현하고, 또 같은 인물을 잡극의 줄거리와 시에 배치하며, 서로 다른 문학 언어를 통해 일정의 서정성을 표현하였다. 우동의 악부시와 잡극은 '새로운 정서를 구식으로 쓴다'는 것으로 체용상통한 특질도 뚜렷하게 보여주었다. 이러한 '아와 속'이 서로 어우러지는 것은 청나라 시 발전의 또 다른 두드러진 표현이며, 잡극에 대한 전체적인 예술성의 발전이기도 하고, '시악동원'에 대한 시대적 해석이기도 간주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