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채보상운동 당시 주요 언론사에서는 의연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과 금액을 일일이 기재하였기 때문에 어느 지역에서 어떤 사람들이 의연금을 냈는지 대부분 파악할 수 있다. 본고는 종교를 단위로 한 의연 사례에 주목하였다. 사찰 혹은 교회 혹은 교인 집단 단위로 의연을 하거나 자신의 정체성을 종교와 관련한 것으로 표기하여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한 사례이다.
본고에서는 불교·천주교·개신교·천도교를 대상으로 각 교단의 입장과 교인의 참여 양상을 검토하였는데, 각각 상이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가장 적극적인 태도를 보인 종교는 불교였다. 불교는 교계 중앙조직에서 공식적으로 의연 참여를 결의하였고, 이에 영향을 받아 전국 승려의 1/5 정도가 의연에 참여하였다. 천도교단은 일간지 『만세보』를 통해 국채보상운동 참여를 적극적으로 독려하고, 의연금 내역을 소개함으로 운동 확산에 크게 기여하였다. 반면 교단 차원에서의 ‘거액 의연’을 거론하며 교인들의 의연 참여는 제한하여 천도교인의 국채보상운동 참여 사례는 거의 확인되지 않는다.
천주교와 개신교 교단은 국채보상운동에 대해 다소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 외국인 선교사가 주도하는 가운데 통감부의 정교분리 방침을 수용하고 있었던 정황이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천주교와 장로교·감리교 등 세력이 큰 교단의 경우 국채보상운동에 대해 특별한 의견 표명을 하지 않았다. 교단의 소극적인 태도는 교인들의 참여에 영향을 주어 참여율은 높지 않다.
각 교단이 보인 태도와 대응 양상은 각 교단이 처한 현실적 여건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점도 확인하였다. 아직 근대적 조직화를 이루지 못하고 사회적 위상도 낮았던 불교의 경우 ‘국민으로서의 의무’ 수행에 적극 나선 반면, 외국인 선교사의 영향력 아래 비교적 안정된 교세를 갖추고 있는 천주교·개신교 교단은 비정치화 노선을 추구하며 보수적으로 대응했다. 이러한 차이는 개신교 내 교파간의 차이에서도 확인된다. 한국 사회에 일찍부터 진출하여 안정적인 교세를 이루고 있던 장로교·감리교와 소수 교파인 영국성공회·대한기독교회를 비교할 수 있다. 교세가 큰 장로교·감리교는 다소 보수적인 입장에서 교단을 운영한 반면, 소수 교파의 경우 한국인의 특색이나 사회적 정서에 맞춰 적극적 포교를 시행하고 있었으므로, 한국인의 국채보상운동에 대해 크게 호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