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최치원이 쓴 「신라수창군호국성팔각등루기」를 신라하대 사회 및 불교문화의 흐름 속에서 고찰하여 10세기초 호국성의 성주인 이재(異才)가 팔각등루를 건립한 후 거행한 낙성회의 성격을 분석한 것이다.
898년(효공왕 2)경 이재가 수창군에 세운 호국성의 불좌(佛佐), 불체(佛體), 천왕(天王), 달불성(達佛城), 불산(佛山) 등의 공간에는 『금광명경』에서 설하는 붓다의 법신에 근원을 두고 나타나는 공덕으로서의 호국의 관념이 담겨 있다. 또 칠미륵상이라는 표현에서 약사여래의 본원력에 의한 호국을 설하는 『약사경』의 영향도 엿볼 수 있다.
선행 연구들에서는 908년(효공왕12) 11월 4일 팔각등루를 건립한 후 개최한 낙성회를 법상종에서 주도한 것으로 보았지만, 이 글에서는 이와 다른 해석을 시도하였다. 낙성회에 동화사의 홍순대덕, 태연대덕, 영달선대덕, 경적선대덕, 지념연선대덕, 흥륜사 융선주사 등이 참여하였는데, 이들의 소속 및 호칭을 볼 때 낙성회에서 행한 의례는 밀교의례, 구체적으로는 속명번등법(續命幡燈法)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도성의 흥륜사 승려가 법상종 자격으로 참여한 것이 아니라 도성 사찰의 대표로서 참여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