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관산에 대한 기록은 고려말 천인이 쓴 「천관산기」가 가장 빠른 까닭에 각 사찰이나 유물들의 자세한 내력을 파악하기 어렵다. 그러나 「천관산기」가 쓰여진 13세기 초는 천관산에서 멀지 않은 강진을 중심으로 백련결사가 일어났고, 저자인 천인이 백련사 주지였다는 점에서 본 기록을 통해 고려 불교계의 양상을 파악할 수 있다. 나아가 「천관사기」가 초본을 토대로 쓰여졌다는 점에서 13세기 이전부터 천관산의 불교 양상에 대해서도 많은 정보를 전해주는 기록임을 알 수 있다. 이에 본고는 네 가지 시각에서 「천관산기」를 재검토하였다. 첫째, 「천관산기」 초본은 헌강왕 때 천관산 세력들이 천관산의 내력을 정리하여 천관산의 위상을 부각하고자 작성한 것으로, 이후 천인은 당대 지명 내지 상황의 변화를 반영하여 기문을 완성하였다. 둘째, 애장왕 때에 천관산에 천관사와 탑산사가 창건되면서 천관보살신앙을 비롯하여 화엄신중신앙, 정토신앙, 약사신앙 등 다양한 신앙이 성행하였다. 셋째, 「천관산기」 초본에 담긴 다양한 양상에 대해 천인은 본인이 가지고 있던 불토관을 토대로 유심정토사상을 제시하면서 기문을 정리하였다. 넷째, 「천관산기」가 실려있는 동문선 속 천인의 작품에 전라도를 ‘호남’이라고 지칭한 것은 천관산과 그 주변을 문화적 측면에서 규합하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이렇듯 「천관산기」를 신라 및 고려 양 시각에서 살필 때 호남 불교계 전반에 대한 파악이 가능함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