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조선왕조실록』에 여러 종류의 신이 중 유독 불상이 땀을 흘린 이적만 주로 기록된 이유를 찾기 위해 중국 고대부터 한국 조선시대까지의 관련 사료를 분석해 보았다. 중국에는 적어도 7세기부터 불상의 발한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으며, 불상의 발한은 전란 및 왕조의 멸망 등 국난을 예고하는 대표적인 신이로 여겨졌다. 이규보(李奎報, 1168~1241)의 「왕륜사장륙금상영험수습기」와 『목은집』에 수록된 이색(李穡, 1328~1396)의 단가는 불상의 발한에 대한 유사한 인식이 고려후기에도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불교국가였던 고려에서 이러한 불상들은 국난을 미리 예고해 주는 호국의 불상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유교를 정치이념으로 택했던 조선시대에는 불상의 발한이 군주가 정치를 제대로 하지 못할 때 발생하는 재이로 인식되기 시작한다. 왕조가 바뀌어 불교의 신이가 유교의 재이로 변화되는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으며, 이에 따라 지방에서 보고된 불상의 발한을 두고 조정의 신하들의 서로 상충되는 주장을 내세우며 논쟁을 일으키기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이는 천명의 움직임을 파악하기 위한 중요한 단서였으므로 상당한 불상 발한에 대한 보고가 18세기 초까지 『조선왕조실록』에 수록되었으며, 불상의 발한이 국난을 예고한다는 인식은 이능화의 『조선불교통사』와 대중매체를 통해 근현대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