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정확한 제작 시기와 조각승을 알 수 없는 〈화엄사 사천왕상〉에 대한 것이다. 〈화엄사 사천왕상〉은 다행히 1628년 〈화엄사 사천왕상〉과 도상, 양식이 유사하여 이들과 비교하여 1635-36년 무렵 조각승 인균이 주관해 조성했을 가능성을 밝혔다. 인균은 송광사, 화엄사, 흥국사, 이 세 사찰에서 모두 불상을 조성했으며, 특히 〈화엄사 사천왕상〉을 응원과 함께 조성했다. 그 경험을 살려 〈화엄사 사천왕상〉도 인균이 주도하여 조성했을 것으로 봤다.
한편, 17세기 전반 전라남도의 세 사찰에만 쥐를 쥔 서방 천왕이 등장한 이유가 무엇인지 역시 필자의 궁금증 가운데 하나였다. 호국, 재물의 상징인 쥐는 중앙아시아 호탄에서 시작하여 티베트, 그리고 명나라로 전해져 1431년 목판본으로 제작되었다. 선조의 부마인 신익성이 명의 불교 서적 및 판화를 들여오면서 이 목판본도 함께 조선에 소개되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벽암 각성은 송광사와 화엄사를 재건하면서 명대 판화를 참고하여 ‘호국과 부를 상징하는 쥐’를 서방 천왕이 쥐도록 표현했을 것이다. 이 글에서 필자는 불교 도상이 불교경전뿐만 아니라 각 지역의 전설, 신화 등을 통해서도 새롭게 생겨나고 하나의 도상으로 정립될 수 있음을 이야기하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