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적인 한국도자사 연구는 고려청자의 발견과 함께 시작되어 최초로 서양인들이 컬렉션을 형성하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야마요시 모리요시(山吉盛義, 1859~미상)나 야기 쇼자부로(八木奘三郎, 1866~1942)가 한국도자사를 구축하려고 시도하면서 조선왕조를 처음으로 한국도자사 속에 평가하였고, 그후에는 수집과 연구 모두 일본인이 주도하게 된다. 1920년대 들어 아사카와 노리타카(浅川伯教, 1884~194),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悦, 1889~1961) 형제와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悦)에 의해 조선백자 수집, 평가와 연구 등 선구적인 활동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수집, 연구, 그리고 도자기에 대한 일반인들의 흥미라는 세 가지 점이 밀접하게 연결되면서 한국도자에 대한 인식이 심화되어 온 것이다.
浅川형제와 柳宗悦의 선구적 활동은 당장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지는 않았지만 1925년 고려다완인 고쇼마루(御所丸)의 고가 낙찰에서 1926년 계룡산 소동으로 일반인들의 흥미를 끄는 상징적 사건들이 이어지면서 조선 고미술, 고도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모았고, 그것이 1930년대 조선백지를 포함하는 조선공예붐으로 이어졌다고 보인다. 그리고, 1930년대 들어서면 조선시대 공예품이 대거 일본으로 보내지게 된다.
나아가 1930년대부터 40년대 전반에 걸쳐 ‘취미 교양’을 추구하는 사회적 계층이 출현하면서 한국인 수집가가 급속히 성장하고 있었다. 근대에 한국도자 수집과 연구면에서 일본인이 큰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 역할은 1930년대부터 이행 조짐이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