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관요에서 제작된 백자 ‘祭’·‘壽’·‘福’명 접시는 제작되는 시기에 따라 글자를 쓰는 시점과 명문을 쓰는 안료에 따라 차이가 있으며, 특히 금사리 관요가 운영되는 18세기 2/4분기부터 제작량이 급증하고 양식상의 변화 역시 나타나고 있는 것을 확인하였다.
첫째, 접시에 ‘祭’명을 쓰는 시점은 1560년대 이전까지는 소비처에서 정각·묵서로 용도를 표기하다가 1560년대 이후부터 관요에서 제기접시를 제작할 때 제례용임을 의미하는 ‘祭’명을 표기하는 것으로 변화되었다. 하지만, ‘壽’·‘福’명은 관요가 설치된 이후부터 관요가 민영화되는 시기까지 접시를 제작할 때 장수와 복을 의미하는 ‘壽’·‘福’명을 표기하는 것으로 확인됨으로서 글자는 쓰는 시점에 차이가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둘째, ‘祭’·‘壽’·‘福’명은 사용되는 안료의 종류에 따라 접시에 쓰는 방식이나 위치에 차이가 있다. 특히, 17세기 이후부터는 ‘祭’·‘壽’·‘福’명을 철화와 청화안료로만 표기하였다, 철화안료를 사용한 것은 원권문이 없고 글자만 단독으로 표기하였으며 굽 안 바닥이나 내저면에 위치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청화안료를 사용한 것은 원권문 안에 ‘祭’·‘壽’·‘福’명을 표기하였으며 내저면에 위치한다.
셋째, ‘祭’·‘壽’·‘福’명 접시의 기형상 변화는 금사리와 분원리 관요에서 가장 두르러지게 나타난다. 금사리 관요의 가장 큰 특징은 굽이 높고, 굽과 동체부까지 각이 진 접시를 제작한 점이다. 그러나 굽의 형태가 각형인 ‘祭’명 접시는 제작하지 않고, 굽과 동체부가 각이 진 ‘福’명 접시는 제작하였다. 반면 분원리 관요는 금사리 관요에서 제작된 동일한 형태의 ‘祭’·‘福’명 접시뿐 아니라 굽의 형태가 원형이고, 굽의 높이가 매우 높은 ‘祭’ 명 접시도 제작한 것으로 밝혀짐으로서 ‘祭’명 접시의 변화 양상이 일정부분 밝혀졌다. 특히, 금사리와 분원리관요가 굽과 동체부가 각이 진 ‘壽’명 접시를 제작하지 않은 것이 밝혀진 것도 성과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