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조선시대 왕실 혼례에서 주준(술항아리)와 화준(꽃항아리)로 사용한 백자용무늬항아리(백자용준)의 조형양식과 신분별 사용방식을 파악하고, 이를 기반으로 영국박물관에 소장된 백자용준 한 점의 제작경위를 구체적으로 밝힌 연구이다. 조선시대 왕과 왕세자의 국혼용 주준인‘백자청화주해’는 왕과 왕세자의 동뢰연에서 주준으로 꾸준히 사용되었다. 그 가운데 조선후기의 백자청화주해는 50cm 이상의 높이를 가진 청화백자호 중 일정한 조건의 문양구성(다섯 발톱을 가진 쌍용, 경부의 당초문, 견부의 여의두문, 저부의 산형연판문)을 갖추고 있다. 이에 비해 왕세자가 아닌 왕자와 왕녀의 혼례에서는 백자청화주해의 사용이 제한되었다. 다만 18세기 전기(1721년~1753년)에‘청화용화준’이란 명칭의 백자용준을 주준이 아닌 화준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영조의 절검정책이 보다 강화되면서 1764년(영조40), 청화용화준을 백준으로 다시 교체시켜 청화용화준 사용의 하한연대가 드러났다. 청화용화준은 백자청화주해의 조형양식과 거의 동일하되, 크기가 30cm대로 상대적으로 작아지고 용의 발톱수가 4개로 줄어든 백자용준들로 파악했다. 이상의 논의를 바탕으로 영국박물관 소장의 〈백자청화철화운룡문‘전지우김씨자손’명호〉가 제작된 배경과 관련 인물들을 조사한 결과, 1732년(영조8)에 혼례를 올린 화순옹주와 김한신의 화준일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 백자용준은 외손의 출생을 간절하게 바란 영조의 바램을 담은 화준으로 화순옹주 부부의 자손인 김이주, 김노영, 김노경, 김정희 등 김씨후손들에게 전해졌을 것으로 추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