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 정치체의 중심-주변의 구조적 특징과 관계성을 도출해 보고자 아라가야를 대상으로 중심의 형성과정에서의 주변 집단의 성격과 역할변화에 대해 검토해 보았다.
아라가야 주변 집단은 군사적 성격의 집단, 전업적 수공업생산집단, 교역항 운영관리집단 등으로 중심지와 일정 거리를 두고 분포한다. 5세기 전엽 이후 주변 집단은 큰 변화를 보이는데, 법수면 일대의 토기생산이중단되고, 마산만의 현동집단에서 생산하던 철기도 5세기 전반 정도까지만 이루어진다. 동시에 교역항인 마산만(덕동만) 및 진동만 운영관리집단의 무덤에서는 아라가야양식 토기가 급격히 줄고 소가야양식 토기를 중심으로 한 주변 가야 소국의 토기양식이 다수 부장되는 현상이 관찰된다. 아울러 진동만의 대평리고분군에는왜계 봉토분이 축조되는 등 큰 변화를 수반한다. 그리고 동쪽과 서쪽 경계에 군사적 집단인 소포리-장지리집단과 오곡리집단의 세력화가 확인된다.
5세기대에 들어와 말이산고분군에서 고총체계가 성립되고 동시에 가야리토성인 왕성이 건립되면서 왕성이 위치한 가야읍과 여항면을 중심으로 2중, 3중 둘러싸듯 방어산성이 본격적으로 축조되는 등 아라가야의중심이 가야읍을 중핵으로 한 함안분지 내로 집중된다. 가야읍 일대가 아라가야 왕도로 본격 건설되면서 중심과 주변을 더욱 뚜렷하게 구분하는 구조로 변화한 것이다. 즉, 이 시기 집권적 영역체제로의 전환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며 이에 의해 아라가야 중심과 주변의 구조에 큰 변화가 나타난 것으로 파악된다.
이는 4세기대 전업적 수공업생산집단과 교역항을 중심으로 한 주변부가 5세기대 가야읍을 중심으로 한왕도 권역으로의 집권적 영역체제 형성 후에 수공업생산은 정치적 권역 내로 포함되는 대신 교역항을 중심으로 일정부분 자율성을 보장받으면서 아라가야 주변이 다른 정치체의 영역 사이의 완충지대를 형성하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아라가야는 4세기대까지는 중심과 주변의 경계라던지 체계적 공간구조를 보이지 않았지만5세기대 이후 중심과 주변이라는 중층적구조(重層的構造)를 이루게 된 것으로 이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