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근대 유학자이며 교육자, 순국지사인 송병순(宋秉珣, 1839~1912)의 『학문삼요』를 살펴보고 편찬의 의의를 밝힌 것이다. 『학문삼요』는 학문의 요체를 독서, 존양성찰(存養省察), 천리(踐履) 세 가지로 규정하고 주희, 이황, 이이, 김장생, 송시열의 글 가운데 핵심적인 내용을 채록하여 1891년(고종 28) 그의 나이 53세 때 편찬한 교육서이다. 송병순은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의 9세손으로, 가학을 바탕으로 큰아버지 송달수(宋達洙, 1808∼1858)의 학맥을 계승한 유학자로, 그의 형 송병선(宋秉璿, 1836~1905)과 함께 연재학파를 형성하여 1,100명의 직전 제자를 양성한 교육자이다. 그간 학계에서는 이들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져 왔는데, 대부분 그들의 생애와 민족운동, 연재학파 형성에 중점을 두고 있다. 특히 우국지사라는 관점에 치우쳐 그들이 남긴 저술에 대해서는 연구가 부족한 상태이다. 송병순은 35권 15책의 문집『심석재집(心石齋集)』과 『학문삼요』, 『주서선류(朱書選類)』, 『고금필첩(古今筆帖)』, 『사례축식(四禮祝式)』, 『용학보의(庸學補疑)』 등 많은 저술을 남겼지만, 번역이나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간략한 해제 작업조차 이루어지지 않은 작품도 있다. 이 저술들은 그의 학술과 사상, 강학 활동 등을 실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자료들이므로 이에 대한 연구를 통해 유학자, 교육자로서의 모습을 조명할 필요가 있다. 현재 『학문삼요』는 다수의 목판본과 필사본이 남아있는데 1903년, 1907년, 1927년 3차례 간인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편찬 취지와 과정, 구성과 방법 등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당시 조선의 국권은 상실되어 가고 서학이 유입되어 정통 유학의 권위는 무너지고 기존의 유교적 질서는 붕괴되는 상황 속에서 송병순이 선현의 저술 가운데 학문의 요체를 담은 글을 발췌하여 편찬한 『학문삼요』는 바로 독서를 통해 배우고 타고난 본성의 회복하고 자신을 살피며 이를 실천하는 유교적 학문을 되살리고자 한 바람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