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피서’는 일반 대중에게는 접근이 제한된 ‘내부발행’된 금서였다. 소련을 중심으로 한 국제수정주의자를 비판하고 중국 사회주의체제의 우위성을 확보하기 위한 정치적 선전물이었다. 그러나 이들 금서는 다양한 루트를 통해 문혁세대에 전달되었고 기존 공산주의 현실과 이념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하게 되는 지적 계기를 마련하였다. 특히 홍위병의 해체와 지식청년의 등장 그리고 그들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형태의 지하독서운동의 과정에서 ‘회피서’에 대한 수요는 급증했다. 그 결과 ‘회피서’는 본래의 목적과는 관계없이 문혁세대에게 주입식 선전 효과가 아니라 오히려 사상적 계몽을 자극하며 맹목적 체제 수용이기보다는 회의와 성찰 그리고 비판을 촉발시켰다.
대표적으로 질라스의 『신계급』을 예로 들 수 있다. 공산당이 새롭게 파시스트정당으로 변모할 수 있다는 경고는 모택동에 의해 제기되었다. 그는 관료주의, 수정주의, 교조주의를 피하지 않을 경우 전국적인 반혁명 復辟이 일어나 마르크스․레닌주의 정당이 반드시 수정주의 정당으로 변모하고 더 나아가 파시스트정당으로 바뀔 것이라고 경고했다. 파시스트정당은 모택동 지적에 따르면 특권관료계층에 의한 정당일 수밖에 없고 그들에 의한 프롤레타리아계급 권력·재산의 재분배 또는 부르주아계급의 부활을 막기 위해 혁명은 계속될 필요가 있었다. 이러한 문혁의 지배적 담론은 형식적으로 볼 때 질라스의 『신계급』에서 보이는 ‘신계급론’, ‘특권계층론’ 등과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었다. 문혁세대가 큰 거부감 없이 질라스의 『신계급』이라는 ‘회피서’를 수용하게 된 데에는 문혁담론과의 유사성이 큰 작용을 했다. 이러한 배경에서 문혁세대는 『신계급』에 열광했고 이 ‘회피서’는 공산당과 문혁을 재검토하고 자율적으로 사고하기 위한 성찰의 교재로서 적극적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