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아일랜드 의회독립 운동의 과정과 결과를 미국혁명과의 관계에서 살펴본다. 구체적으로는 아일랜드가 아메리카와 영향을 주고받으며 유사한 출발점 만들어 갔지만 미국혁명의 분리독립과 다른 의회독립으로 귀결된 원인을 설명하고자한다. 아일랜드를 영국 의회법에 구속시킨 1720년 아일랜드 선언법은 1766년 아메리카 선언법에 대한 갈등 이후 아일랜드에서 새롭게 주목받게 되었다. 아일랜드와아메리카의 다른 선언법은 혼동되고 동일시되며 비판을 받았고, 그러한 아메리카와의 공통된 대의는 1780년에 등장한 아일랜드 의회독립 운동에서 자리잡게 되었다. 아일랜드인들은 아메리카인들처럼 의회의 대표체계를 재고하며 권리와 자유의 언어로 의회독립을 요구했고, 결국 1782년에 선언법을 폐지하며 의회독립은 달성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이듬해 아메리카의 분리독립과 다른 결과였다. 두 나라의 차이를 만들어낸 가장 결정적 변수는 저항 운동의 성격보다는 영국 왕 조지 3 세의 행위에 있었다. 아메리카인과 아일랜드인 모두 왕에게 충성하면서 영국의회의 권위를 비판하고 영제국의 통치에 저항하려고 했다. 그런데 조지 3세는 아메리카인의 저항만 반란으로 규정했고, 그 결과 아메리카 식민지만 분리독립의 길을걷게 되었다. 아일랜드는 아메리카처럼 분리독립의 길로 갈 동기가 비교적 부족했던 것이다. 왕과 의회가 통치하는 영제국의 정치 구조에서 본다면 미국혁명이 아일랜드 의회독립의 경로에서 벗어난 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