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일전쟁 후 임시정부와 이동을 함께 했던 ‘한국청년’은 광복진선 대부대의 피난을 도우면서 독립운동 세력의 총결집을 추동하고 재중 동포들 의 대일항전의식을 고취하고자 했다. 이들은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와 한국청년전지공작대를 차례로 결성해 한국독립운동 세력의 통일조직체 수립과 한중연대 실현을 위한 활동을 전개했다. 두 공작대는 인적으로도 연계되어 있었으며, 주요 활동의 하나로 항일 선전·예술 활동을 실행했다 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류저우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대표해 부상 장병 위문금 모금공연을 펼친 청년공작대는 첫 창작 연극 「국경의 밤」을 통해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명확히 하며 ‘한국 독립군’과 한중연대 를 실현하면 대일항전에서 승리할 수 있음을 극화해 보였다. 중국군과 연 합해 활동한 전지공작대는 시안에서 아리랑 공연을 성황리에 진행했 다. 「국경의 밤」과 함께 초모활동의 성공 실화를 극화한 「한국의 한 용사 」, 항일가극 「아리랑」이 무대에 올랐다. 특히 연극·노래·무용이 모두 어 우러진 가극 「아리랑」은 총연출 한형석을 통해 중국 문화예술계 인사까 지 대거 참여하면서 공연 자체로 한중연대를 실현하였다. 개별 명성이 크지는 않았던 ‘한국청년’들은 두 공작대를 이어 항일 선전·예술 활동과 성공적 초모 활동을 진행함으로써 중국군·민뿐 아니라 한 국 독립운동세력에도 ‘한국청년’의 역량을 증명해 보였다. 새로운 2세대 독립운동가라 할 수 있는 이들의 성공적 활동은 임시정부 및 가족부대에 게 활력이 되는 한편 임시정부 간부 등 1세대 독립운동가에게는 자극제 가 되었을 것이다. 공연에 활용된 음악은 주요 관객인 중국군·민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유명 서양 가곡, 항전가요, 한국적 정서를 담은 한국 민요와 가곡 등이었 다. 「그리운 강남」, 「반달」, 「청년행진곡」, 「최후의 결전」, 「승기가」 등 의 항일음악과 일제에 침탈당한 상황과 이에 맞선 강인함, 투쟁 정신 등 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장미화」, 「데아볼로」 등이다. 특히 「승기가」, 「한국행진곡」 등 새로운 항일노래가 창작되었을뿐 아니라 형식적 측면 에서도 항일가극이라는 새로운 양식이 등장해 항일음악사에 큰 변화와 발전이 있었다 하겠다. 또 가극 「아리랑」 전반에서 한국적 가락과 정서 를 적극 표현했다는 점에서 이 시기 ‘한국청년’ 및 한국 독립운동세력의 대일항전 주체로서의 자신감을 일정부분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