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국 농촌사회의 토지 소유는 매우 불균등했다. 극소수의 부재지주들이 대규모의 토지를 소유했고 촌락 내의 토지도 소수의 지주나 부농들 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1930년대 중반 부재지주나 대토지 소유 자, 부농은 거의 대부분 중국인이었다. 조선인들은 대부분 중국인 지주로 부터 영세한 토지를 빌려 소작 생활을 하고 있었다. 중국인과 조선인이 섞여 사는 잡거부락에서는 중국인 지주와 조선인 소작인 사이의 민족적 계급적 관계가 형성되어 있었다. 조선인 농민의 위상은 중국인 농민보다 훨씬 열악했다. 이들 사이에는 민족적 계급적 갈등이 있었다. 일본 국책 회사 소속의 집단농장이나 안전농촌에 집단 이주한 조선인 농가들은 자 가 노동력을 바탕으로 논농사에 주력하고 있었다. 그들은 토지나 역축을 소유하지 못한 채 과중한 소작료나 세금 등에 시달렸다. 그들의 순 재산 은 감소하고 있었고 경제적으로 열악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일본 식민당 국에서는 국책회사 소속 집단농장을 건설해 식량을 확보하는 동시에, 항 일무장세력의 대항할 수 있는 치안 거점을 만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