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묵재일기』와 『양아록』을 자료로 해서 이문건(李文楗)의 손자 숙길(淑吉)의 성장 과정과 공부 방식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 것이다. 이문건은 1551년 1월 숙길이 출생한 이후 그의 일기에 손자의 동태를 매일같이 기록하였다. 일반적으로 『양아록』이 대표적인 육아일기로 알려져 있지만, 『묵재일기』가 실질적인 육아일기에 해당한다. 『양아록』은 『묵재일기』를 저본으로 해서 작성한 시문집인 것이다. 그러므로 숙길의 성장 과정을 올바르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묵재일기』와 『양아록』을 비교 검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문건이 손자 숙길에게 집착한 데에는 그들만의 특별한 사연이 있었다. 이문건과 안동 김씨 김돈이(金敦伊) 사이에는 4명의 자녀가 있었으나 3명은 일찍 죽고 이 중에 아들 하나만 겨우 성장하였다. 그러나 이 아들도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운 잔질인(殘疾人) 이었다. 온(熅)은 어렸을 때에는 비교적 영리한 편이었으나 열병과 풍을 앓아 정상적인 생활이 어렵게 되었다. 이러한 까닭에 부족한 아들을 키우면서 이들 부부사이에 드러난 갈등도 적지 않았다.
온은 첫 번째 혼인에 실패하였으나 다행히 김종금(金鐘金)과 재혼하여 4명의 자녀를 두었다. 이들 중 숙복(淑福)이 사망함으로써 3명만이 성장하는데, 숙희(淑禧)ㆍ숙길ㆍ숙녀(淑女)가 그들이다. 이들 중 이문건이 관심을 기울인 대상은 숙길이었다. 이는 아들에 대한 기대와 관심이 손자에게로 옮겨간 것이다. 이문건은 16세기를 살아간 인물임에도 남아선호사상아 뚜렷하였다. 그리하여 3명의 손자녀 중에 유일하게 숙길에게 논 5마지기를 별급(別給) 하였으며, 서울의 저동 집을 팔아서 정섭에게 준다는 사실에도 반대하였다.
이문건은 숙길이 공부를 열심히 해서 가문을 빛내주기를 바랐다. 그리하여 손자의 공부에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였다. 숙길은 6살부터 공부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손자는 천품이 뛰어나지 못한 데다 의지도 박약하였다. 숙길은 이질ㆍ학질ㆍ두역 등 다양한 질병에 시달렸으며, 11살부터는 술을 마시기 시작하였다. 숙길은 온 집안의 만류에도 음주에서 벗어나지 못하였으며, 결국 주취(酒醉)로 공부와 멀어졌다.
결과적으로 숙길은 할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지는 못하였다. 그는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였으며, 다만 임진왜란 당시에 의병으로 활동한 것이 이력의 전부였다. 그러나 성주 이씨 가문이 그나마 가문의 면모를 유지해 나갈 수 있었던 것은 이문건이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