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군수사령부의 역사는 초기 6·25전쟁의 성격을 결정한 낙동강방어선 전투와 인천상륙작전의 배경을 이해할 단초를 제공한다. 즉 부산군수기지사령부에서 부산군수사령부로의 전환은 작전 변경에 따른 사령부의 구조 변화이다. 따라서 부산군수사령부의 운영과 역할, 그리고 이에 대한 전반적인 역사를 분석하는 것이 이 논문의 목표이다.
1950년 7월 13일 예상외로 빠른 북한군의 남진과 미 제24사단의 대전지역의 참패가 맥아더로 하여금 전술상의 변화를 이끌어 내었다. 즉 미 제1기병사단을 활용하여 인천에 상륙 북한군의 남침을 저지하려는 맥아더의 전쟁 초기 구상인 블루하츠(Blue-hearts) 구상이 좌절되었다. 이는 미 제24사단을 주축으로 이루어진 주한미군사령부를 지원하는 소규모의 부산기지사령부의 역할을 변경하도록 하였다. 그때까지 지휘 및 지원을 담당했던 기지사령부를 군수사령부로 개편하게 되었고, 부산기지사령부는 부산군수사령부로 변경되었다.
부산군수사령부는 B형 군수사령부로 편성되었다. 부산군수사령부는 또한 대량 피난민 처리, 전쟁포로 수용 및 보급, 그리고 마산, 울산, 포항 및 군산항과 같은 보조항의 운영을 책임지고 있었고, 1950년 9월 중순에는 서해안에 있는 제3군수사령부에 대한 감독과 한국의 원산에 있는 미 제10군단에 대한 보급임무를 추가로 맡게되었다.
1950년 9월 19일 부산군수사령부는 전투부대의 증가에 따른 군수 지원의 책임이 증가됨에 따라 C형의 군수부대인 제2군수사령부로 개칭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