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조선전기 창술의 군사적 위상과 활용 형태를 살펴보고, 임진왜란을 거치며 새롭게 조선군에 보급된 명군의 다양한 槍術에 대해 짚어본 글이다. 특히 조선 정조대 간행된 군사무예서인 『무예도보통지』에 수록된 長槍·竹長槍·旗槍·鎲鈀·騎槍·狼筅 등 6가지 창술의 기법상 특성과 진법 속에서의 움직임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조선시대 槍이 갖는 무기사적 의미와 군사무예로서의 가치를 통시대적으로 파악하였다. 그 중 몇 가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조선의 守城軍은 기본적으로 槍手와 弓手를 각각 50명을 기본으로 하여 편제가 이뤄졌다. 중앙군의 경우도 국왕의 근접 시위에 방패군과 연동하여 창수를 가장 많이 배치하여 활용하였다. 둘째, 보병용 창검술이 모두 무과시험 과목에서 제외되어 창술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무과시험 과목 중 騎槍이 유지되어 그나마 기본적인 흐름은 유지할 수 있었다. 셋째, 임진왜란이 발발하면서 조선의 전술 및 무기체계는 많은 변화를 겪었다. 일본군의 조총과 단병접전술을 가미한 전술을 극복하기 위하여 척계광이 정리한 『기효신서』에 담겨 있던 창검법을 조선 방식으로 정리하여 『무예제보』를 편찬하게 되었다. 넷째, 正祖14年(1790)에는 『무예도보통지』가 간행되었으며, 이 병서에 정리된 여섯 가지 창술은 長槍·竹長槍·旗槍·鎲鈀·騎槍·狼筅 등으로 각각 장단병기가 서로 상생하며 전술에 활용 가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