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조약체제는 19세기 이래 서양 제국주의 국가들의 주도로 성립되었다. 서양 열강으로부터 조약 체결을 강요당한 국가들은 조약이란 제도와 관련 용어들을 제대로 이해하기도 전에 그들의 위압에 불평등조약을 체결해야 했다. 조선은 1876년 일본과 ‘朝日修好條規’를 체결하면서 근대 조약 체제에 편입하였으나, 동양의 전통적인 국제질서체제가 혼용되어 불완전한 편입이었다. 조선은 당시의 조약형식에 충실한 1882년의 ‘조미수호통상조약’을 통해 근대 조약체제에 확실히 편입하였다.
조선이 근대 조약 체제에 편입하고, 朝鮮策略이 국내에 소개되면서 만국공법과 조약 관련 용어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크게 확산되기 시작했다. 이때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萬國公法인데, 청국의 문화와 언어생활에서 비슷한 뜻을 가지고 있는 용어를 차용하여 번역되었다. 이 때문에 초기에는 동양사회 에서 상대적으로 빠르게 국제법의 이해도를 높이는데 기여했으나, 점차 본뜻에 충실하지 않은 번역의 문제가 나타났다. 그리고 1880년대 후반부터는 조선 사회에서도 만국공법 및 힘에 의해 좌우되는 국제관계, 조약의 현실에 대한 회의가 표출되기 시작했다.
이는 국제 관계의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게 되었다는 조선사회의 인식의 진보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이는 조약이 결코 조항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현실 경험, 만국공법 외에 다른 국제법 서적들도 소개되어 비교가 가능해졌다는 점, 조약 및 국제법 관련 용어에 대한 새로운 번역의 시도 등이 작용한 결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