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1259년 고려 태자 왕전과 쿠빌라이 만남의 배경・양상을 고찰하여 그 의의를 규명하고 고려가 이에 관한 기억을 생산하여 대몽 외교에 활용하는 모습을 조명했다. 우선 왕전의 사행로를 복원하여 그가 연경에서 동관으로 통하는 직행로를 밟고, 귀환할 때 변량을 지나는 새로운 길을 택하여 쿠빌라이를 방문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또한 그가 일찌감치 변량에 가서 악주에서 빠르게 북상하던 쿠빌라이를 기다려 만남이 성사되었다고 추정했다. 왕전의 쿠빌라이 방문은 뭉케 사망 후 몽골의 정세에 관해 탐문하고 내린 결정이었을 것이다. 뭉케 시기 쿠빌라이는 경조를 분봉지로 받아 측근 막료를 파견하여 선정을 베풀어 사대부・백성으로부터 크게 칭송받았다. 왕전도 탐문 과정에서 한인・유학을 보호하는 쿠빌라이에게 큰 매력을 느끼고, 몽골과 중국적 세계질서에 입각한 화평관계를 맺기 위해 그를 귀부의 대상으로 선택했다고 보인다. 고려는 그 만남에 관해 몇가지 새로운 기억을 생산하여 대몽 외교에 적극 활용했다. 몽골도 오래도록 그 만남의 의미를 높이 평가했으므로 그러한 고려의 외교활동을 문제 삼지 않았다. 그 기억을 앞세운 외교활동을 통해 고려는 몇 가지 중요한 외교적 성과를 거두었다. 따라서 그러한 기억의 생산・활용은 몽골에 대한 고려의 능동적・성공적 외교활동의 사례로 평가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