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10세기에서 12세기 사이 동아시아 세계의 문화 교류를 포함한 국제 교류를 주도하였던 遼 왕조를 중심으로 한 冊封 朝貢 관계를 살펴보았다. 우선 遼 왕조가 구축한 세계의 구성원이었던 ‘屬國’과 ‘屬部’의 개념을 다시 검토하였고, 다음으로 遼 왕조와 이들 사이의 책봉 조공 관계의 운용에서 드러나는 새로운 양상을 확인하였다. 우선 『遼史』 「屬國表」가 지닌 문제점과 속국 개념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 결과 이 사료가 여러 가지 문제를 지녔지만, 그것이 ‘속국’ 개념을 부정할 정도는 아니라는 점을 확인하였다. 오히려 일부 문제는 ‘속국’이 遼代 국제질서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로서 매우 유동적인 존재였음을 보여주는 근거로 활용될 수 있었다. 둘째로, 屬部 혹은 部族 개념을 확인하였다. 부족은 宮莊[본부]과 속국 사이에 개재하였으며, 기본적으로 요 국가 내에서 외부로부터의 침입을 방어하는 역할을 하였다. 부족은 부락 혹은 씨족의 존재 형태에 따라 그 사회적 정치적 지위가 결정되었으며, 요 황제가 운영하는 통치 질서와 국제질서를 구성하는 한 요소로 기능하였다. 마지막으로 이 시기 책봉 조공 관계의 운용에 대해 살펴보았다. 遼는 陳과 宋 등의 중원 국가를 제압하였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속국과 속부를 거느린 강대국이었다. 이러한 국가가 皇帝를 자칭하고, 다른 나라의 황제를 冊立까지 하였으니, 황제 국가라고 부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다만, 고대의 황제 국가와는 그 통치체제가 달랐다. 그 달라진 통치체제에 의해 운용되는 국제질서 또한 기존과 같지 않았다. 이를 보여주는 특징 중 하나가 대량의 歲幣와 歲貢이었다. 진 시황이 고안하고 한 무제가 유지 발전시킨 황제 국가 개념이 천년을 넘어서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일 리 없다. 특히 전방위적으로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고 여겨지는 10세기 이후 출현한 遼東의 황제 국가는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