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한국전쟁 이후 서울에 모여 작업을 재개한 재현자기 장인들이 1960년대를 기점으로 그들의 활동무대를 이천으로 옮겨가게 된 배경 및 원인과 활동양상을 고찰한 것이다. 이천일대에 형성된 인・물적 인프라를 통하여 1960년대 이후 한국도자가 재현되고 새로운 계승과 복원구조를 형성시키는 과정들이 당시 이천의 재현자기 장인들에 의하여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살피고 그 의미를 정리하는 것에 본 연구의 목적을 두었다. 재현자기의 생산이 다시금 일정 틀을 갖추고 재건된 시점은 광복과 한국전쟁을 거친 이후로, 경기도 이천과 여주 등지에서 새로운 요업활동이 시작되던 1960년대 초중반 무렵에 이르러서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이천일대에는 1950년대 후반 서울의 한국조형문화연구소(성북동가마)와 한국미술품연구소(대방동가마) 등에서 근무하던 유근형, 지순택 등이 퇴직 후 내려와 자리를 잡는다. 이들이 여주나 광주가 아닌 이천에 정착한 이유는 이천 수광리에 위치한 칠기가마의 존재 여부에 있었다. 특히 칠기가마의 구조는 자기가마와 동일하였다. 따라서 대방동가마에서 나와 재현자기 작업을 지속하고자 했던 장인들에게는 바로 활용 가능한 시설과 환경이 갖추어진 곳으로 제격이었다. 당시 이들 외에도 이천일대에는 재현자기 제작에 있어 주축이 되었던 많은 장인들이 모여 전통도자를 전승함에 있어 각기 다른 역할로 매진하였다. 실질적인 제작, 판로개척과 유통 등 각각의 역할은 조금씩 달랐으나 상호 이해관계 속에서 공생하며 재현자기 제작, 요장의 운영 그리고 기술 전파를 통한 계보 형성에 힘썼다. 특히 이들은 1980년대 이후로 현재까지 이어지는 이천 도예 역사의 일면을 형성하는데 초석이 되었다는 것에 있어 매우 의의가 크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