틸리야 테페 묘장이 있는 박트리아는 동서교섭의 요충지로서 페르시아, 그리스, 중앙아시아의 유목민들이 유입되어 다양한 문화적 속성이 혼합된 곳이다. 이 때 박트리아는 월지의 5부족을 통일한 쿠샨왕조에 의해 지배되던 시점이었다. 월지는 기존의 박트리아인들 뿐 아니라 온 다양한 종족을 통합시켜 쿠샨왕조를 일으켰다.
쿠샨왕조의 지배세력으로 추정되는 틸리아 테페의 피장자들이 폐쇠된 조로아스터교 신전에 금관을 쓰고 묻힌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의문이 이 글의 발단이 되었다. 틸라아 테페의 피장자들의 종족적 성격에 대해서는 여러 이견이 있다. 기본적으로 쿠샨왕조가 불교사회라는 점을 감안할 때 피장자들의 부장품에 불교적인 요소가 없는 점, 또한 피장자들의 복식이 월지이전 박트리아를 차지했던 파르티아계라는 점으로 인하여 파르티아 인으로 보기도 하였다.
이 글에서는 틸리아 테페 묘장의 피장자들은 월지인으로 판단하였다. 남성 피장자인 4호묘 관의 위쪽에서 말뼈 매장이 이루어진 점을 주목한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월지 종족으로 판단되는 알타이 파지리크 묘장에서부터 사카계 묘장인 베렐 고분에서 이루어진 말 제사 의식을 살펴보았다. 고인이 저 세상에 잘 도달할 수 있도록 진행된 말 제사의식은 이들이 월지의 문화적 정체성을 쿠샨사회에서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4호묘 묘주의 양과 나무 관식은 시베리아계의 관식으로 태양의 하늘과 소통할 수 있는 권위의 장치이자 피장자가 태양의 하늘에서 다시 새로운 삶을 얻을 수 있는 상징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