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는 사람과 물자가 유통되는 인공물이다. 신라 왕경에는 다양한 규격의 도로가 존재하였다. 특히 왕의 거소인 월성 인근에 대로가 집중된 양상을 보여준다. 도로의 너비는 권위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왕경으로 집중된 도로는 지방 촌락에서 올라오는 물산이 집중되는 통로이자, 국왕의 명령이 하달되는 창구라는 이중성을 가진다.
왕경의 도로 가운데 조로가 확인된다. 문헌사료에도 보이는 조로는 넓은 너비에 직선화된 길이었다. 모든 관원이라 할지라도 통행할 수 없었다. 조로는 조회, 조관, 조복 등의 공통분모를 추출할 수 있다. 특히 신라는 진덕여왕 이래 조원전에서 신년하례식을 하였다. 이는 곧 중국적 시간질서에 편입된 결과였다.
조로의 후보지가 되려면 일단 대로이며, 월성 인근에 조영되어야 하는 조건에 부합하여야 한다. 이러한 조건에 맞는 도로는 경주박물관 남측부지 내 유적(19.8m)과 경주박물관 미술관 부지 내 유적(23.7m)을 잇는 남북도로, 월성의 정문과 전랑지 서측을 잇는 것으로 추정되는 발천에서 확인된 남북도로(20m), 황룡사지 남측 부지에서 확인된 광장형 도로 정도이다. 왕거인 옥사의 무대가 된 조로는 바로 이 대로 가운데 하나였을 것이다. 즉 이 도로들은 궁과 연결된다는 점에서 가장 권위가 있는 조로였을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