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의 목적은 임화의 사상과 의식 구조를 ‘연극 비평’이라는 시각으로 재조명하고, 그의 연극 비평을 통시적으로 고찰하고 주요 특징을 탐구하는 데 있다. 이를 바탕으로 임화 연극 비평이 근대 연극 비평사, 특히 카프 비평사에서 어떤 위치와 의미를 지니는지를 평가하고자 한다.
임화는 등단 직후에 계급문학 및 예술론을 활발히 받아들이고, 독일 ‘오천인좌’, 막스 라인하르트 극장 등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면서 카프의 이념에 맞는 연극 공연 형식의 개혁에 나서게 되었다. 카프에 가담한 임화는 프로연극운동에 관심을 기울이며 그의 연극 비평은 점차 뚜렷한 정치성을 드러내게 되었다. 1930년대 중반기에 들어서서 임화는 연이어 「송영론」과 「유치진론」을 발표하였다. 임화는 자신의 연극 비평과 극작가론을 통해 당시의 주요 연극인들인 송영, 유치진 등과의 심도 있는 대화와 연대를 추구하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임화에게 비평의 주관성이란 일종의 ‘상호주관성(inter-subjectivity)’이라고 할 수 있으며 「송영론」과 「유치진론」 등을 통한 작가와의 대화는 임화가 그들과 함께 공유하는 이상, 즉 일종의 ‘상호주관성’을 구축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1930년대 후반기에는 임화가 초기 비평에서 나타난 신극을 무자비하게 비판하는 ‘적대적 태도’에서 신극의 발전에 대해 적극적으로 조언을 제시하는 ‘유보적이며 우호적 태도’로 변화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신극론」을 비롯한 글들을 통해서 임화는 신극이 직면한 어려움을 분명하게 인식하면서도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작업은 그의 「개설 신문학사」와 「조선영화론」과 같은 맥락, 또한 같은 기획 안에서 사유될 수 있고 그의 체계적 문예론의 태동이라고 볼 수 있다.
임화의 연극 비평은 외국극 사례를 조선에 소개하면서 초기 민중극에 대한 상상을 유발하고 프로 연극의 출발을 예고했다. 그의 「신극론」을 비롯한 평론들은 한국 신극의 발전과 문제점을 극복하는 방안을 제시하면서 한국 연극사에 한 획을 그었다. 또한, 임화의 연극 비평은 당시 조선 연극 운동과 카프운동의 통일, 그리고 민병휘, 송영, 박영호와 같은 동료들과 함께 1930년대 후반의 프로연극 담론을 추진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