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맑스는 『정치경제학비판 요강』에서 「기계에 대한 단상」과 「화폐에 대한 단상」을 내재적인 문제의식으로 삼아 전개시켰다. 그러나 자본과 화폐를 엄격히 분리시켜 사고함으로써 신용창조와 발권력을 나누어 보았던 유토피아적 사회주의자들과는 달리, 자본에 시녀가 된 화폐만을 다루는 데 머물렀다. 이로써 맑스주의자들은 자본이라는 스스로 가치증식하는 화폐(M-M’)를 거부하면서도 다시 그 대안으로 자본을 제시하는 자본파로서의 면모를 그대로 드러내 보였다. 여기서 본 논문은 제프리 잉헴의 화폐에 대한 9가지 구분을 받아들이면서도 동시에 그것이 지도화되는 과정에 대해서 주목한다. 여기서 자본은 ‘의미화=모델화=가치화’의 하나의 속성으로 고정됨으로써 가치증식을 한다면, 화폐는 ‘지도화=메타모델화=다가치화’를 통해서 속성변화를 할 뿐이다. 특히 화폐 중 을(乙)의 화폐인 ‘구매력의 화폐’와 갑(甲)의 화폐인 ‘청구권의 화폐’ 사이의 양극성과 함께 9가지 화폐 사이에서 속성변화가 일어날 때마다 발권이 가능한데 이는 화폐가 갖는 다극적이고, 지도제작적이고, 메타모델적인 면모의 표현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신용창조와 발권이 동시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시민들 스스로에게 별도의 발권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지속적으로 감추어져 있었다. 그러나 지역화폐, 시간화폐, 생태화폐는 시민들의 발권력에 기반하여 커먼즈를 형성하면서, 코인과 같이 발권력 자체가 신용창조를 이끌 것이라는 화폐에 대한 왜곡으로부터 벗어나서 발권력 자체가 탈성장이나 자급자족, 기본소득의 매개체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그런 점에서 생태민주주의는 화폐와 기술(네트워크)을 기반으로 돌봄과 커먼즈의 화폐화를 가속화하면서 수축경제를 상쇄하고 강력한 민주주의를 대안으로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