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계몽주의에 대한 기존 비판을 극복하고 그 보편적 당위성과 진보적 측면을 재조명하고자 한다. 이를 위한 방법으로 계몽주의 비판으로 유명한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도구적 이성” 개념을 논의의 기초로하여, 근대 동아시아의 계몽사상가 중 한 명인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 吉)의 사례를 통해 그간의 도구적 이성에 대한 비판이 정당했는지 평가하고자 한다. 여기서 계몽주의가 낳은 도구적 이성이 반동적이고 억압적인 사회에서는 상당히 개혁적인 역할을 하는 한편, 인간 실존의 문제, 즉 근본적인 삶의 이유와 방향성의 문제는 등한시한다는 문제를 제기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본 논문은 다음과 같은 세 단계의 논의를 거친다. 첫째, 계몽주의가 낳은 근대적 합리성의 맹점을 지적하는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막스 호르크하이머(Max Horkheimer)가 제기한 “도구적 이성”의 개념을 분석하고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계몽주의 비판이 갖는 한계를 정리한다. 둘째, 19세기 동아시아의 계몽사상가 중 한 명인 후쿠자와 유키치의 예를 통해 도구적 이성의 개혁적 측면을 살펴본다. 셋째, 후쿠자와 유키치 사상이 제국주의적인 면모를 보이게 되는 과정을 추적하며 도구적 이성의 문제가 자체 모순이 아닌 그 불완전성에 있음을 밝히려 한다.
후쿠자와 유키치가 설파했던 서구적인 학문과 지(智)의 개념은 바로프랑크푸르트학파가 계몽주의의 핵심이자 문제점으로 지적한 도구적 이성과 거의 동일하다는 점에서 도구적 이성에 대한 연구 사례로 적합하다. 본 논문의 목표는 프랑크푸르트 학파와 후쿠자와를 비교분석하거나 후쿠자와 유키치에 대한 어떤 새로운 해석을 제기하기보다는, 후쿠자와의 예를 통해 도구적 이성의 가치를 재평가하는 것에 있다. 즉 후쿠자와 유키치 사상의 변천을 사례로 활용하여, 궁극적으로 도구적 이성이 급격한 변화를 요구하는 사회에 매우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는 장점을 보여주는 한편, 인간의 삶에 근본적인 방향성과 목적의식을 부여할 수 있는 인간 존재의 문제를 외면한다는 문제가 있음을 제시하고자 한다. 즉 도구적 이성은 그 자체로 모순적이라기보다는 “불충분”한 “약한” 이성이라는 점을 결론적으로 보여주고 이를 극복할 방법을 몇 가지 제시하고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