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시학적(poetical) 사유를 활용하여 현대 법철학계에서 논의되고 있는 법의 본질을 둘러싼 논의들을 독해해 본 것이다. 무엇보다 필자는 현대법철학계의 법의 본질에 대한 논쟁점을 ‘자연법의 내재적 위상’에 대한 문제로 접근하기 위해 법시학적 제안을 구상한다. 이러한 구상의 출발점은 고대 그리스의 사상이다. ‘사유’(thought)의 근원지라 할 수 있는 인간의 잠재적 역량(dynamis)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위대한 발견에 따라서 법의 현실태(energeia)는 법적 잠재성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 질문해 본다. 법적 잠재성과 현실태는 실정법과 자연법의 관계로 어떻게 해명될 수 있는지? 필자는 이를 poiesis 對 praxis, 형식 對 내용, power 對 right라는 대립적 관계 설정 속에서 고찰해 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詩가 역사보다 더 철학적이라고 말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책에서 시인에게 ‘이성과 플롯의 지위’를 부여함으로써 철학적 시인의 자리를 마련한다. 즉 플라톤이 추방하고자 했던 시인에게 폴리스 내에서의 지위를 마련해 준다. 고대 그리스의 두 철학자가 바라본 시인과 철학자의 관계가 법의 본질에 대한 논의와 관련하여 어떤 의미를 던지는가? ‘법시학(legal poetics)’은 아직 해명되지 않는 학문분과이다. 따라서 이 글은 법시학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나온 사유물이다. 아직까지도 진행 중인―인류가 생존하는 한, 영원히 풀리지 않을 수 있는― 현대 법철학의 핵심적 논제인 법과 도덕의 관계는 법시학적으로 잠재적으로 어떤 가능한 답변 하나를 찾고자 한다. 즉 ‘있는 법(what law is)’과 ‘있어야 할 법(what law ought to be)’의 관계는 플라톤이 주장하는 ‘가짜시인추방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적 시인’의 관점은 아닌지?
필자는 실정법에 내재된 자연법의 위상은 시인(포이에테스, poiêtês)으로서 입법자와 법관의 역량에 의존한다고 보고, 시처럼 법도 플롯과 미메시스, 그리고 카타르시스라는 차원에서 허구적 활동인 포이에시스이자 동시에 프락시스적 활동으로서 의의를 지닌다. 이 글에서 프락시스의 두 가지 차원을 제시한다. 법률적 불법을 회피할 법관의 임무는 첫째는 작위적 저항의 의미에서 안티고네적 저항의 형식만이 아니라, 둘째, 부작위의 측면에서, 바틀비테제처럼 “I would prefer not to do(나는 안 하는 편을 선택하겠습니다)”라는 無爲라는 행동양식도 있음을 제시함으로써 G. 라드브루흐가 “법률적 불법과 초법률적 법” 라는 글에서 허용한 법왜곡죄와 법관 개인이 어떻게 책임을 회피해야 하는지 하나의 방안을 제시해본다. 라드브루흐에 대한 비판은 L. 풀러와 H.L.A. 하트에 의해 제기되었다. 이 글에서는 법시학적 관점에서 풀러와 하트의 논쟁을 재해석하고 J. 피니스의 자연법논의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R. 드워킨의 서사적 자연법과 박은정의 자연법에 대한 주장의 법시학적 측면을 고찰한다. 특히 하이리히 뵐의 “아담 그대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소설과 빅토어 프랑클(Viktor E.Frankel)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소개하면서 필자는 박은정이 추구하였던 실천을 위한 자연법의 복권의 의미를 인간성의 복원으로 되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