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구는 근대기 대구의 독립운동가이자 서화가인 긍석(肯石) 김진만(1876-1933)의 회화 작품 전반을 이해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김진만은 1916년 8월 독립군 군자금 확보를 위해 벌인 대구권총사건으로 8년 4개월 동안 투옥되었던 독립운동가다. 그가 그림을 그린 것은 대구형무소에서 나온 후 작고하기 까지 9년간이다. 화가의 길을 가게 된 데는 일경의 감시로 사회 활동이 어려웠던 점, 친척인 유명 서화가 석재 서병오의 영향, 당시 대구의 서화 열기 등이 작용했다.
김진만은 서병오와 함께 근대기 대구 전통화단을 대표하는 문인화가다. 김진만의 작품세계는 사군자, 괴석, 화훼, 기명절지 등 다양하다. 김진만은 서병오의 영향 아래에서 차분하고 정제된 자신만의 화풍을 이루었다. 김진만의 굳세고 청량한 묵죽과 사군자는 그가 실천한 독립지사의 기개와 정신을 시각적으로 증명하는 듯하다. 김진만은 조선 말기부터 애호된 괴석화를 즐겨 그렸고, 사군자화훼병풍으로 모란, 연꽃, 포도, 파초, 비파, 소나무, 오동나무, 계수나무 등 다양한 화훼도 그렸다. 수묵 사의(寫意) 화풍의 기명절지화도 많이 남겼다.
김진만은 사군자, 괴석, 화훼, 기명절지 등 사군자류 그림만을 그렸고, 작품 속에 일체의 사적인 정보를 남기지 않았으며, 병풍화를 다작했다. 사군자류 회화를 고수한 것은 민족의 독립을 위해 직접 투쟁에 나섰던 김진만의 군자적 삶을 반영한다. 작품 속에 일관되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것은 일제 치하의 세상에 대한 소리 없는 저항이자 둔세(遁世)의 태도를 나타낸다. 병풍화 다작은 김진만이 대작 위주의 치열한 작품 활동을 했다는 점과 아울러 김진만의 사군자류 병풍을 애호한 문화적 취향을 지닌 상류층이 근대기 대구에 많았다는 사실을 알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