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극장의 창단공연인 〈흑룡강〉은 이론으로 제시되었던 국민연극이 어떻게 공연으로 구현될 수 있는지를 극계에 제시하는 작품으로 주목받았다. 〈흑룡강〉에서 유치진은 만주의 조선인 무장농민군의 활약을 영웅적으로 다루었다. 조선인들이 무력하게 죽어가는 현실과 달리 극 속에서 조선인들은 일본 관동군의 보호를 받으며, 직접 총을 들고 위협에 맞서 자신들을 지켜낸다. 유치진이 〈흑룡강〉에 조선인 무장농민군을 등장시킨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만주 주둔 관동군 토미야 대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토미야 대좌는 일본의 만주이주 정책에 깊이 관여한 인물로, 조선인의 만주이주 필요성을 주장했다. 그는 국경 부근의 개척단에 조선농민을 주체로 하는 공동체를 정착시켜 방위의 거점으로, 병참으로 활용하려 하였다. 〈흑룡강〉에서 무장한 조선농민군이라는 등장시킬 수 있었던 것은 일본의 만주 이주정책을 주도했던 인물의 조선인 무장이민에 대한 구상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토미야 대좌의 계획은 일본인들을 위해 조선인들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구상이었다. 그런 점에서 조선인 농민들이 무장 개척단이 되어 비적과 싸우면서 만주에 정착하는 과정을 선택한 유치진의 〈흑룡강〉은 조선인의 시각에서 포착된 만주가 아니라, 일본인의 시각에서, 일본의 대륙진출을 위해 필요한 조선인의 역할을 제시하는 작품이 된다. 이는 식민지조선을 일본의 한 지방으로 인식하고, 일본이라는 국가를 위한 연극을 만들어가는 역할을 자임한 현대극장 소속 연극인의 국민연극에 대한 인식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