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9년(숙종 15) 기사환국 직후에 이루어진 인현왕후 폐위와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감행한 친국(親鞫)은 전제권력의 자의성과 폭력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일련의 사건이었다. 숙종은 자의적인 폐비와 폭력적인 친국을 통해 왕권의 절대성을 신하들에게 각인시키려 하였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나 저항의 정당성만 강화해주었다. 폐비반대 운동의 중심에 박태보가 있었다. 그는 폐비반대가 공론임을 내세워 전제권력의 자의성을 비판하였다. 그리고 임금이 실행(失行)하면 군덕(君德)을 보도(輔導)하는 것이 신하의 직분이라며 친국의 폭력성에 맞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