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에서는 박세당(朴世堂, 1629∼1703)이 그의 두 아들 박태유(朴泰維, 1648∼1686)와 박태보(朴泰輔, 1654∼1689)에게 보낸 간찰을 분석해서 학자이자 관료였던 부자간에 어떠한 조언과 자문을 했는지 살펴보겠다. 이들은 모두 과거에 합격한 후 관리 생활을 했다. 따라서 박세당은 두 아들에게 아버지이자 정치 선배였다. 조선시대에 아버지와 아들이 대를 이어 문과에 합격한 후 벼슬살이를 하는 경우는 적지 않았다. 그러나 박세당과 박태보처럼 부자가 모두 문과에 장원급제하는 것은 드물었으며 정치격변기에 핵심 인물들로 활약하는 것은 매우 흔치 않았다. 박세당이 두 아들에게 보낸 간찰은 그의 문집인 『서계집』에 실려있는데 이를 분석해 본 결과 그는 아들에게 아버지이자 유학자로서 건강, 소양, 처신 등에 대해 조언했으며 정치 선배로서 출처와 걸군, 호포와 문묘출척, 답험과 역마 등에 대해 자문했다. 그가 자문한 내용은 당시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박세당은 그의 언행이 충(忠)과 신(信)에 뿌리를 둔 인물로 평가되는데 두 아들에게 보낸 간찰을 통해서도 이러한 점이 그대로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