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당 장석영의 『대례관견』은 치밀한 구성과 면밀한 고증을 갖추고 있기에, 장석영의 예학적 역량과 학술 성향을 잘 보여주고 있는 저서이다. 그는 『대례관견』에서 『예기』의 경문과 주석을 각 장별로 치밀하게 분석하였다. 아울러 일반적으로 주자학적 세계관에서 예학을 배울 때는 보통 『朱子家禮』를 보편적으로 공부하는데, 장석영은 古禮를 중심으로 『의례』와 『예기』를 본격적으로 다루었다. 이는 암울했던 시대적 상황을 극복하고 실추되었던 禮敎를 회복하고자 하는 그의 실천적 학풍이 표출된 것이며, 이것은 예학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겠다. 장석영은 사상적인 측면에서 사람의 기질지성은 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다고 했으며, 이미 정설로 굳어진 학설에 대해서도 시비를 가려 보완하는 진취적인 학문 성향을 보였다. 특히, 노론계열 사이에서 벌어진 호락논쟁이 모두 기를 위주로 하는[主氣] 실책에 빠져 있다고 비판하였다. 그리고 경세적인 측면에서는 ‘정전제’의 한계성을 비판함과 동시에 ‘한민명전제’의 적합성을 긍정하였다. 결과적으로 이와 같은 그의 업적은 스승이었던 장복추와 이진상도 이루지 못한 것이었다. 즉, 『대례관견』에 나타나는 『예기』 13편에 나타난 문제의식과 정치한 분석력은 이미 스승의 예학을 뛰어넘어 일가를 이룰 정도였으며, 이는 스승의 예학을 계승·발전시킨 것에서 나아가 자신만의 독자적인 예학적 세계관을 드러낸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서 우리는 19세기 중반~20세기 초반을 대표하는 예학 전공자 장석영의 위상을 가늠해 볼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