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다산 정약용의 사유에 나타난 公私 관념과 정치적 공공성의 문제를 분석한다. 그는 인간이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하는 윤리적 욕구를 가지며, 부유하고 귀해지려는 정치적 욕구를 지닌 존재라고 보았다. 다산이 주목한 公 개념에는 만인이 함께 가진 도덕적 욕구라는 의미가 있다. 그가 道心이 공적이라고 한 것은 그것이 衆人의 호오, 인민이 함께 가진 公共한 욕구였기 때문이다. 다산이 강조한 정치적 공공성도 다수 인민의 욕구를 적절히 실현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는 제도와 절차를 통해 권력의 상호견제, 역할과 능력에 따른 차등대우가 가능한 국가운영안을 설계했다. 여론에 기반한 목민관의 추대, 상제의 간선, 제명(帝命)을 따르는 관료들의 국왕 견제는 왕정에서 군주의 정치적 공공성을 구현하기 위한 장치로 고안되었다. 그는 인사고과를 받지 않던 재상을 포함한 고위공직자에 대해 엄격한 고적제를 제안했는데, 이는 賢臣의 막중한 책무―제명, 군주방벌, 후대―에 준하는 고강도 평가였다. 다산은 정치적 공공성을 뒷받침하는 심층의 윤리적 공정성에 대해 숙고한다. 그는 민의 호오를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능력과 공적에 따라 차등적으로 욕망을 충족시킬 방법을 고민한다. 이 대목에서 다산이 인민을 스스로 도덕판단이 가능한 자율적 주체로 상정한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예치국가의 군주와 지식인이 자신이 마련한 제도적 공공성을 실현하는 정치 주체라고 가정했다. 그럼에도 다산의 사유에서 공적인 道義之性과 道心을 인지하고 실천하는 주체는 만민으로 상정되었다. 정치적 공공성을 근거 짓는 公의 의미, 공정성을 판별하는 도덕판단의 주체를 民으로 본 것이다. 다산이 만민이 공유한 윤리적 판단의 보편성에 기반해서 정치적 공공성과 공평, 공정의 의미를 어떻게 해명했는지 검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