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오래전부터 한반도와의 역사적, 지리적, 문화적, 풍속사적 인연이 깊은 산동(山東)의 노수(魯繡)를 통해 조선 자수사의 공백을 살피는 시도이다. 노수는 명대 후반 무렵 명성을 얻기 시작한 강남의 고수(顧繡)와는 달리, 고대를 거쳐 중세원에 이어 청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와 지속적인 상관을 고찰할 수 있어, 하나의 자료로서 의미를 가지고 있다. 특히 조선 후반을 기해 입수되거나 제작된 노수풍의 유물들은 당시 지배층의 문예적 취향과 산동과 연관이 깊은 안주수를 비롯한 조선화된 자수에 대한 다양한 정보도 담고 있었다.
고대부터 사용되던 꼰사는 중세 송대 말 푼사와 회수가 감상용 자수그림의 제작에 사용되면서, 중세 동아시아 자수 제작에서 푼사가 유행하는 시기를 거쳐, 원대에 다시 유행하는 실의 유형이다. 이런 푼사의 사용은 원대 말 산동 노수에서 융사(絨絲)인 푼사에서 선사(線絲)이 꼰사로 실의 조건이 변함에 따라, 새롭고 다양한 정연된 자수기법들이 출현하게 되면서 노수는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당시 복식 의장의 견고함을 위해 꼰사를 유행시켰기 때문에 산동의 노수를 ‘의선수(衣線繡)’라고도 칭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상황은 『노박집람』(1517년경)을 통해 조선에서도 실의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를 통해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노수풍 유물들과 명청대 노수와의 비교와 함께, 조선에서 전개되는 꼰사라는 특화된 실의 상태라든가, 자수된 연지수금도나 고사인물도의 도상과 작풍 및 조선의 궁양(宮樣)인 2줄 정금사[정채사]의 전개 양상, 궁수와 민수, 안주수 등 여러 관점을 상관지어 살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