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의 구국과 동모산의 위치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과제 중의 하나이다. 구국과 동모산의 위치에 대한 의견은 14세기 원나라 때부터 제시되기 시작하였는데 2000년대 초 오동성과 영승유적 발굴조사 이전까지 심양설, 액돈산설, 영고탑설, 악다리성(오동성)설, 노령설, 화전설, 집안설, 액목 숭령설, 돈화 성산자산성설, 돈화 영승유적설 등 다양한 의견이 제시된 바 있다.
하지만 돈화 오동성과 영승유적이 2002~2003년에 실시한 발굴조사에서 금대의 유적으로 보고되면서 구국과 동모산의 위치에 대한 새로운 탐색이 시작되었다. 그 결과 동모산 성자산산성(=마반촌산성)설, 동모산과 평지성 통구령산성 및 석호고성설, 구국 서고성설 등 새로운 의견들이 제시되었다. 최근 중국학계에서는 동모산 마반촌산성(=성자산산성)설이 크게 힘을 얻고 있는데 그것은 2017년에 연길 동쪽 성자산산성의 동구에서 발해 초의 것으로 판단되는 대형의 건축지가 발굴되었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발해의 구국과 동모산의 위치에 대한 지금까지의 의견들을 모두 살펴보고, 돈화지역에서 새로이 발견된 일심촌유적(묘둔유적)에 주목하여 구국과 동모산이 여전히 돈화지역에 위치한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구국 시기 동모산은 성산자산성, 평지거점은 일심촌유적(묘둔유적), 왕실 장지는 육정산고분군일 것으로 각각 추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