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세기 초·중반 고구려의 대중국교섭 양상은 시기별로 뚜렷이 달라진다. 420년대 전반까지는 주로 송과 교섭하다가, 430년대 후반에 북위와 본격적으로 교섭하고, 440년부터는 북위와의 관계를 단절한 채 송과 교섭했다. 이에 대해 고구려가 백제나 왜, 북위 등 특정 국가에 대응하기 위해 외교정책을 폈다고 보는 연구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그렇지만 모든 외교교섭을 특정 국가에 대한 대응책과 연관시켜 이해할 경우, 외교정책의 전체 방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위험이 높아진다. 이에 이 글에서는 국제정제의 동향과 주요 국가의 대외정책을 고려하면서 고구려 외교정책의 성격을 다각도로 고찰했다. 그 결과 고구려가 국제정세의 전반적 추이에 대응하는 방향으로 외교정책을 추진한 사실을 확인했다.
420년대 전반까지는 송이 주도하던 국제정세에 대응하기 위해 송과 활발하게 교섭했다. 고구려는 평양천도로 외교교섭을 중단했다가, 435년 북연의 멸망이 임박하자 북위와 조공·책봉관계를 맺고 북위의 위협에 대처하려고 시도했다. 그렇지만 북위는 주변국과의 화친관계를 화북통일을 위한 전략으로 활용했고, 화북통일 이후에도 정복정책을 계속 추진했다. 고구려로서는 별다른 외교적 선택지가 없었다. 이에 고구려는 송이나 유연 등과 교섭하며 북위의 위협에 대응했다. 특히 고구려는 송과 교섭하며 중개교역을 추진하는 한편, 송 중심의 국제관계망을 활용해 동남아 국가나 서방의 토욕혼과도 교역을 전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