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는 공황과 만주사변을 거치면서 잇달아 전쟁을 일으키고 파시즘 체제로 나아갔다. 이때부터 일본에서는 일본정신을 강조했다. 식민지 조선에서는 중일 전쟁 뒤에 본격적으로 일본정신을 강제하기 시작했다. 조선을 ‘병참기지’에서 ‘정신기지’로 전진시키는데 내선일체론은 중요했다. 내선일체론을 실현하려면 조선인에게 반드시 일본정신을 불어넣어야만 했다. 일본정신이란 “천황에게 충성하고 국가에 봉사하는 것”이었다. 멸사봉공은 일본정신을 나타내는 핵심어였다.
일본정신이라는 시국어는 하나의 유행어처럼 되어 필요에 따라 여러가지로 활용되었다. 또한 일본정신은 강렬한 배외주의와 일본 제국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역할도 했다. 일제는 일본정신을 몸에 익히게 하려고 여러 의례를 강제했다. 또한 방공방첩의 사상전에서도 일본정신으로 무장하라고 요구했다. 일제는 정신세계를 강박할 뿐만 아니라 생활세계를 식민화하는 데에도 일본정신을 주요한 기 제로 활용했다. 패전의 나락으로 떨어질수록 일본정신은 기괴하고 섬뜩해졌다.
일제는 ‘심신일체의 원리’에 따라 신체적 의례와 체육활동을 통해 일본정신을 조선인의 몸에 스며들게 하려고 했다. 체조를 통해서 일본정신을 이식시키려 했다. 중일전쟁 뒤부터 일본정신이 있는 체육을 해야 한다면서 무도 교육을 강조 하기 시작했다. ‘학교의 병영화’와 함께 무도 교육도 강화했다. 또한 일본의 무도인 검도, 유도, 궁도 말고도 ‘신무도’인 총검도와 사격도를 훈련시켜 예비 병력을 육성하려 했다. 특히 국방무도인 총검도를 보급하여 전력증강에 보탬이 되도록 했다.
전시체제기에 일제는 일본정신과 같은 ‘정신주의’를 전면에 내세웠지만 다른 쪽에서는 근대적인 총력전을 주장하는 모순된 모습을 보였다. 이때 봉건적인 멸사봉공의 원리가 공사(公私 )관계를 재정립하면서 그 모순을 은폐하는 역할을 했다.
일제는 일본정신을 앙양하는 것이 ‘황민 연성’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일본 정신은 일본인에게도 관념적이고 환상적이었으며 조선인에게는 공허하고 모호했다. 정신적 굴종을 강요하고 무의식을 통해 황민화를 진행하려 했던 지배계급 의 의도는 빗나갔다. 비합리적인 ‘정신주의’로 현실의 모순을 감출 수는 없었다. ‘봉공’에서 자발성은 사라지고 강제만이 덧씌워졌다. 강제된 자발성은 당연히 문제를 일으킨다. 일제는 조선인의 체육활동을 기획하고 조정해서 일본정신을 몸 에 익히도록 했다. 그러나 식민지인들은 그것마저도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