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중국 북조기(北朝期)의 불교미술에 나타난 다양한 불교 고사(故事) 중에서 아육왕시토(阿育王施土)와 정광불수기(定光佛授記) 본생(本生) 장면에 주목한 글이다. 이 두 주제는 운강석굴(雲岡石窟) 및 6세기 중국 불교조각에서 각각 가장 빈번하게 묘사되었으며, 두 주제가 짝을 이루어 대칭을 이루는 위치에 표현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운강 중기 및 후기에 이르러 이 두 고사는 아육왕시토의 특징적인 도상(圖像)이 정광불수기 본생 장면으로 전이되어 결합되어 가는 양상이 나타난다. 특정 도상이 전이되어 다른 주제로 인식된 불교 고사의 다른 사례는 종래 알려진 바가 없는 만큼 이러한 현상은 중국 불교미술사에 있어서 매우 특이한, 주목할 만한 결합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본고는 아육왕시토와 정광불수기 본생과 관련된 문헌을 조사하고, 중국 북조 후기에 제작된 운강석굴 벽면의 부조와 기타 불교조각에 나타난 이 고사를 표현한 장면의 구성 및 시각적 특징들을 분석하여 두 주제가 결합되어 가는 양상을 추적하였다. 이어서 선행 연구에서 이 두 고사의 결합 이유로 제시되었던 다양한 견해들에 대해서도 논의하였다. 이 연구를 통해 북조 말기 불교 문화가 당시 불교도들의 종교적 열망을 효과적으로 드러낼 수 있도록 기존의 개별 도상을 조합하여 새로운 재현방식을 창조해 낼 수 있을 정도로 매우 역동적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정광불수기 본생과 아육왕시토 인연 장면의 결합과 관련된 논의에서 주목할 만한 사례 중 하나로 현재 보스턴미술관(Museum of Fine Arts, Boston) 소장의 〈불교조상비(佛敎造像碑)〉를 들 수 있다. 1910년 9월에 보스턴미술관에서 구입한 이 조상비에는 정면을 향한 불입상을 중심으로, 좌측에 정광불수기 본생 장면과 우측에 아육왕시토 고사 장면이 표현되어 있다. 지금까지 출판된 바 없는 보스턴미술관의 이 불교조상비는 이 연구에서 자세히 살펴본 두 고사의 도상적 결합이 일어난 결과물로서, 6세기 후반에서 7세기 전반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이 조상비의 중국 불교조각사상의 위치를 비정해 본 것도 이 글의 중요한 의의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