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미술의 해외 국제전 참가의 역사는 곧 한국현대미술사의 이정표였다. 그것이 국가를 대표하여 참가하는 국제 비엔날레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했다. 현대미술의 후발 주자로서 서구의 현대미술과 어깨를 견주는 동시대성의 확보에 목말라하던 국내 미술계의 열망은 국제 비엔날레를 통해 그 창구를 확보할 수 있었으며, 새로운 사조를 직접 목격하고 이를 따라잡는 숨가쁜 릴레이가 이어졌다. 참여 작가들은 서구 중심의 국제 비엔날레의 현실을 마주하며 서구의 모방이라는 오명을 씻고 한국현대미술의 존재의 이유를 증명하기 위해 분투했다. 이때 전통은 세계가 함께 겨루는 비엔날레의 치열한 경기장에서 한국 미술가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방패였다.
이 논문은 한국현대미술이 처음으로 참가한 국제 비엔날레였던 1958년 국제현대채색석판화비엔날레를 시작으로 1960년대 파리 비엔날레와 1995년 베니스 비엔날레의 한국관 개관전, 그리고 2015년 이후 이어진 베니스 비엔날레 단색화 병행전과 최근 2017년, 2019년의 비엔날레 출품작에 이르는 몇몇 주요 사례들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 한국현대미술에서 ‘전통’에 대한 담론이 변모하는 과정을 추적했다.
한국현대미술은 세계 미술계에서 입지를 확보하기 위해 전통의 수사학을 구사하며 서구 중심의 국제 미술계에서 오리엔탈리즘의 시각으로 구축되어 온 타자성을 충족시켜 왔다. 또한 전통은 국내에 서구현대미술 사조가 토착화되는 과정에서 우리 현대미술의 차별성과 독자성을 주장하는 기반이 되었다. 한국현대미술이 그 미감에 내재되었다고 여겼던 ‘고유한’ 전통을 찾는 과정은 곧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를 소환하고 이를 재창조하는 과정이었다. 이전의 전통이 발굴해 내야 하지만 손에 잡히지 않는 과거의 실재였다면, 오늘 한국 동시대미술에서의 전통은 상상의 영역에 존재한다. 이제껏 한국현대미술에서 전통의 논의가 보여 주듯이, 전통은 취사선택되며 재조합되고 만들어진다. 이렇게 만들어진 전통은 과거가 아닌 현재를 반영하고 새로운 서사를 생산하며, 바로 그 전통의 허구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전환된 동시대의 전통을 만들어 냄으로써 서구 중심의 국제 미술계가 요구하던 타자성의 전복을 도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