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초의 행적과 그의 『왕오천축국전』은 그야말로 하나의 충격에 가까울 정도로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우선 그가 서기 719년 어린 소년의 나이로 당나라로 배움의 길을 떠난 것과 또 곧 이어 천축국(인도)으로 떠나 거의 4년에 걸쳐 두 발로 걸어 천축국뿐만 아니라 서역과 중앙아시아의 수많은 나라들(40개국)을 꿰뚫는 순례여행을 감행한 것이 경탄스럽다. 세상과 맞부딪치는 현사실적인 여행은 인간 현존재의 실존적인 경험과 깊이 관련된다. 여행하고 사유하며, 기도하고 염려하며 깨달음을 향한 행보에서 그는 크고 작은 깨달음과 일상세계를 초월하는 존재경험을 체득했을 것이다. 그런데 혜초와 그의 『왕오천축국전』에 대한 연구는 대부분 그에 대한 전기나 기행문 및 기행의 행로, 당대의 지리적 상황 등에 집중되어 있고, 문학적・철학적 탐구에는 빈약한 상태이다. 필자는 이 소고(小考)에서 혜초의 구법여행과 기행문을 하이데거의 현사실성의 해석학과 존재사유에 입각하여 재조명해보았다. 또한 혜초의 4대 성지여행과 불탑들에 대한 여행경험을 하이데거의 그리스 신전 해석과 관련지어보았다. 혜초의 여행목적은 이런저런 존재자를 목격하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을 향한 구법(求法)여행이기에, 그의 행보는 존재자의 세계에 구속되지 않는 여행이었다. 『왕오천축국전』은 물론 논증을 바탕으로한 철학적 텍스트는 아니다. 그러나 문학적⋅철학적으로 읽고 해석할 수 있는 영역이 있으며, 그러한 해석이 ―마치 칸트가 『판단력 비판』에서 공통감(sensus communis)에 의해 보편타당성을 구축할 수 있는 것처럼― 결코 합리성을 벗어난 추측이 아님을 인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