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반민법 제정 과정의 논쟁과 동원된 협력자 학병에 주목하여 반민특위의 친일 청산에서 일제 식민지하의 협력 가운데 일부를 친일반민족행위로 갈라내는 청산의 정치가 어떻게 펼쳐졌는지를 고찰한다. 반민특위의 친일 청산의 과제는, 친일파에 대한 엄정한 처벌과 함께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인민들에게 친일의 혐의에서 벗어난 떳떳한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을 부여하는 것이었다. 이때 근본적인 딜레마는 총동원체제 하에서 광범위하게 동원된 협력으로 인해 친일에 연루된 민족 구성원의 수는 너무 많았지만, 이들 모두를 친일로 처벌할 수 없을 뿐더러 오히려 ‘반민족적 생활’을 해야 했던 이들에게 떳떳한 구성원으로서의 자격을 부여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이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제국의 병사였던 학병이 소환되었다. 반민법 제정 과정의 논쟁에서 학병은 식민지 인민의 동원된 소극적 협력을 희생과 저항으로 정당화할 수 있도록 하는 근거가 되었다.